본문 바로가기
Life Log

계보로 본 전설의 피겨여왕들

by 달토끼남편 2009. 3. 29.
Legend tree of figure skating queens.


카타리나 비트

Katarina Witt(카타리나 비트) - 동독 출신의 피겨여왕.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4년 뒤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1984, 85, 87, 88년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3~1988년까지 유럽선수권대회 6연패에 빛난다.

1995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으며 96년엔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1998년엔 플레이보이지에 누드로 나와 플레이보이지 역사상 2번째로 매진된 판이었다. (첫번째 매진판은 마릴린 몬로의 누드사진이 실린 판.)



미도리 이토

일본 나고야 출신의 Midori Ito

카타리나 비트가 금메달을 차지했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는 5위를 차지했고, 84년부터 96년까지 일본선수권 대회 9연패의 장본인이다.

하지만 이 선수가 유명한 것은 88년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1991년 알베르빌에서 열린 프레올림픽 대회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라이벌 크리스티 야마구치를 이겼다.



크리스티 야마구치

Kristi Yamaguchi -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국 여자스케이터

1991년과 92년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이고,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동계올림픽 당시 같은 미국팀 내의 토냐 하딩과 일본의 미도리 이토 등 강력한 라이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모두 트리플 악셀에서 실패했지만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예술적인 면과 트리플-트리플 컴비네이션에 집중하므로써 메달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김연아 선수의 시상식에서 꽃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당시 유명한 사건으로 토냐 하딩의 낸시 케리건 테러사건이 있었다.
94년 1월, 라이벌 관계였던 하딩이 전 남편 등을 고용해 케리건의 무릎을 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Maria Butyrskaya - 러시아 선수권대회 6번, 유럽선수권 3번 우승자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싱글부문에서 가장 나이많은 우승자로 기록된 선수며 최초의 러시아 우승자이기도 하다.

1998년과 200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땄으며, 98년 동계올림픽에서는 4위에 그쳤다.

그녀가 2002년 유럽 선수권대회에에서 우승했을 때 그녀 나이 29세였다. 역시나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가장 나이 많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 선수도 98년에 플레이보이 러시아판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녀의 특이한 이력들로 인해 포함시켰다.



사라 휴즈

좌측부터 이리나 슬루츠카야(러), 사라 휴즈(미), 미쉘 콴(미)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고향에서 퍼레이드를 벌였고,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이 날을 사라 휴즈의 날로 선포했다.

그러나 경력으로 보면 올림픽 챔피언 외에 그다지 큰 두각을 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연아가 이룰 올림픽 챔피언 선배 자격으로 포함시켰다.

이리나 슬루츠카야

러시아 스케이터 Irina Slutskaya

2번의 세계선수권 우승, 2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리고 4번의 그랑프리 파이널 챔피언,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최초로 7번 우승한 여자선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리나는 트리플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을 성공시키 최초의 여자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개발한 더블 비엘만 스핀(다른 발은 머리너머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한발로 회전하는 자세)을 하면서 이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고, 최초로 트리플 샐코, 트리플 루프, 더블 토-루프를 성공한 여자 선수이기도 하다.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 자세)

러시아 스케이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자 싱글 선수로 알려져 있다.

2003년엔 그녀의 어머니가 심각하게 아프다는 소식에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포기했으나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녀의 어머니는 호전되었고 이리나 자신이 피로와 다리 혹 등의 병을 얻어 오랜 시간 병상에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2005년 유럽과 세계선수권 타이틀을 거머쥠으로써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2005년 세계선수권 대회는 새로운 채점시스템으로 열린 대회였는데 이리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여 관중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미쉘 콴

Michelle Kwan - 9번의 미국 챔피언, 5번의 세계 챔피언, 2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미국 스케이트 역사 상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로 기록되고 있는 선수다.
1994년 토냐 하딩에 이어 미국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함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해 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미국팀 대표로 선출된다.

그 자리는 원래 앞서 언급했던 93년 미국선수권대회 우승자 낸시 케리건의 자리였으나 하딩의 테러로 부상을 입어 13살의 미쉘 콴이 대신 참가하게 되었다. (경기에 뛰진 않았다.)

16살이었던 96년 드디어 미국 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 대회를 석권한다.

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라이벌이었던 같은 미국팀 타라 립핀스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한다. (Tara Lipinski는 당시 15세로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나이어린 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

현재는 NBC 방송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고 아직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2006년 관절수술 이후 더 이상 대회에 나서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할지 여부는 2009년에 결정하겠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그 때면 그녀 나이 29살이다. (우리 연아가 있으니 금메달은 언강생심이고...일본의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나 캐나다의 조아나 리세트 등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어 사실상 은퇴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김연아


누가 뭐라고 해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이다.

부상 등으로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챔피언의 자리를 몇 번씩 내줘야 했지만 2009년 재활에 성공해 4대륙 선수권대회는 물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각종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명실공히 전설의 피겨 여왕 계보를 잇는 당당한 피겨여왕이 되었다.

무엇보다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여자선수로는 넘보기 힘들다는 200점 대를 넘어섬으로써  피겨 역사의 커다란 획을 긋게 되었으며, 이제 연아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피겨여왕들의 계보를 살펴보면 좋든 싫든, 언론이 만들어 냈던 아니던 항상 라이벌이 있어 서로 경쟁하며 실력을 겨루었고, 당당히 1인자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또, 척박한 한국 피겨스케이팅 환경에서 세계선수권 대회 챔피언은 물론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연아는 천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도전자로서 한국민에게 자긍심은 물론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에 좌절하거나 주저않은 이가 있다면,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참고자료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