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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로그

고3때 촌지받던 담임에 대한 기억

by 달토끼남편 2009. 5. 15.

제목처럼 요즘도 교사들에게 촌지를 주는지 모르겠다.

스승의날이니 생각나는 한 가지가 있는데, 내가 고3 입시가 끝나고 입학원서를 쓰려면 담임교사의 상담과 허락(?)이 있어야 해서 나는 굳이 In Seoul의 대학원서를 들고 담임을 찾아갔지만, 담임이 극구 반대를 하며 지방대 원서를 쓰란다.

당시 나는 대학에 가기보다는 사회에 빨리 진출해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래서, 대학원서도 사실 형식적인 것일 뿐이었기에 굳이 지방까지 내려가서 원서를 접수하고 하는 불편함이 싫었기에 그냥 집 근처에 있던 대학의 원서를 들고 갔던 것 뿐이었다.

차라리 원서라도 안내려고 했으면 다행인데 그래도 학력고사도 보고 했기에 그냥 남들 다 하는 원서라도 내보자는 심정이었는데 담임이 극구 반대를 하니 교무실을 나와 화가 나 원서를 찢어버렸다. (난 고3 올라가면서 담임에게 대학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었고, 담임은 그런 내가 무슨 문제아인줄 알고 고3 1년 내내 주시하고 있었다. 난 고3 1년 내내 학교 성실히 다녔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대학입시 원서 마지막 접수날이었던가?
할 수 없이 어머니가 학교까지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봉투를 꺼내 담임에게 건냈다.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가보신 어머니는 생업에 바뻐 고등학교 내내 담임 얼굴 한번 못본 것이 내내 마음이 걸리셨고, 그렇게 해야만 내 자식 잘되는 줄 아셨다.

담임은 능숙한 솜씨처럼 재빠르게 봉투를 건내받고는 담임 책상의 서랍을 열어 봉투를 얼은 집어넣었다.



난 그 때 열린 서랍 사이로 수북히 쌓여있는 흰 봉투를 보았다.

그리고, 뭐랄까...학생을 위한다는 담임의 말도 다 공허한 거짓말로 들렸고, 권위있는 스승에 대한 신뢰나 믿음마저 다 무너져 버렸다.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던 나였지만 그 돈이 주는 의미는 최소한 알고 있었다.

봉투를 건내받은 담임은 결국 내가 가져간 대학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었고, 난 겨우 원서접수 마지막 날 접수를 하고, 그 후 보기 좋게 그 대학에 떨어졌다. (뭐 당연한 결과지만)

그 해 난 다른 친구들이 재수를 하거나 대학에 들어갔을 때 기능사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2년을 국비로 공부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뒤에 대학교에 들어갔다.
 
결국 돌아서 가긴했지만 남들과 똑같이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대학졸업장없는 것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대학 입학 전 짧은 사회생활하면서 느꼈기 때문이었다.)
뭐 지금도 내가했던 결정들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어쨌거나, 고3때 보았던 담임의 봉투가 수북한 서랍은 마치 사진의 한 장면처럼 각인이 되어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학부형이 아니고, 주변의 얘기를 들은 적도 없어 지금도 교사들이 촌지를 받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분명 그런 교사들도 있을테고, 내 자식 위해 또 주는 학부모들도 있을테지.
하지만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한 지금 양심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성실한 교사들의 힘이 과거처럼 스승의 그림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나마 스승을 존경할 수 있는 상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빈다.